본 글은 한국은행의 "알기 쉬운 경제이야기" 열다섯째 마당의 모든 내용을 블로그 형식으로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경제변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의 역사적 의의
근래에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를 바둑에서 꺽었을 때도, 자율주행자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도, 그리고 금융이나 배달 앱을 광고할 때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산업혁명이라면 보통 18세기 중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면직물 공업을 중시으로 한 급속한 경제발전을 가리킵니다. 이 최초의 산업혁명이 1차 산업혁명이라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4차 사업혁명이란 과연 무엇이고, 또 기존의 다른 산업혁명들과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x Forum)에서 동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에 의해 처음 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1~4차 산업혁명은 각각 다음과 같이 규정됩니다. 1차 산업혁명은 1760~1840년에 걸친 최초의 산업혁명이며 증기기관과 면직물 공업에 의하여 특징됩니다.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어졌으며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 IC 집적회로의 등장에 의해 시작된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을 내용으로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 시기의 정보기술 혁명을 기반으로 하며 인공지능과 빅테이터,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등의 주요혁신을 지칭합니다.
1,2,3차 산업혁명의 구분법은 기존에도 통용되던 것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은 최근에 들어서야 나타났으며, 이를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등 다른 용어로 부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에 해당하는 정보기술 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이를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존의 정보기술 혁명과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범용기술이 산업혁명의 원동력
특정한 용도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윌한 응용이 가능하여 경제 전체에 파급 효과를 미치는 기술.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등이 이에 속함
각 산업혁명은 매우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지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 GPT)을 선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1차 산업혁명 때는 증기기관이 대표적인 범용기술이었으며 이를 활용하여 탄광의 배수펌프, 방직기, 증기기관차, 증기선 등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2차 산업혁명 때는 내연기관(가솔린, 디젤엔진 등)과 전기가 핵심 범용기술이었습니다. 이를 활용해 자동차와 비행기가 만들어 질 수 있었고 전등, 전화, 라디오와 TV, 냉장고 등의 전기제품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3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IC 집적회로와 인터넷이 발명되고 이후 PC 보급 및 인터넷 서비스, 전자상거래의 확산 등을 통해 정보기술 혁명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핵심적 범용기술을 제시할 수 있어야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경우에는 인공지능이 그러한 핵심범용기술로서 잠재성을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공학에서는 미리 정의 되어 있는 문제를 일관된 규칙에 따라 연역식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 불리는 근래의 인공지능은 반대로 수많은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귀납적으로 풀어나갑니다. 기존의 프로그래밍이 미리 정해진 규칙을 개별 사례에 적용하는 방식이라면, 인공지능(기계학습)은 개별 사례들로부터 규칙을 발견해 나가는 방식이빈다. 기존의 소프트웨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 풀 수 있다는 한계가 있어서 적용사례가 제한되었으나, 기계학습은 데이터 기반의 귀납식 문제 풀이를 통해서 컴퓨터가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을 비약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많은 데이터를 입력하여 학습시키면 스스로 성능이 개선되는 것을 뜻하며,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여러 방식 중 현재 가장 각광받고 있음
4차 산업혁명의 특징
4차 산업혁명도 3차 산업혁명과 똑같이 정보기술을 내세우고 있으미 그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차이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정보기술 즉, IT 산업의 광범위한 외연확장이 이뤄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3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정보기술 혁명은 IT 산업으로 불리는 한정된 산업을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나머지 부문은 대체로 기존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헸습니다. 예를 들어1990년대 중반 이후 닷컴 호황기를 살펴보면 PC와 인터넷과 같은 정보기기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자동차나 냉장고 등 물리적 기기의 성능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자동차가 실시간으로 인터넷 네트워크에 무선으로 접속하여 도로상황 등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다운로드받거나 실시간으로 다른 자동차와 운행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말함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자동차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자율주행차가 되거나 사물인터넷을 통해 커넥티드카(connected car)가 되며 냉장고도 사물인터젯ㄱ을 통해 인터넷 망에 연결이 됩니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IT 융합을 통해 기존의 비 IT 산업에도 IT 기술이 대대적으로 적용되어 IT와 비 IT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한 융합이 절정에 달하면 모든 산업이 IT 산업이 되기 때문에 IT 산업이 별도의 산업으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주력 기업들이 기존의 전통산업에서 나오거나 기존의 전통산업과 중첩된 업무영역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역사가 100년이 넘은 GE나 지멘스 같은 전통적 제조업체들이 스마트 팩토리나 사물 인터넷 등에서 혁신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BMW 회장 하랄드 크루거는 4차 산업혁명이란 디지털 세상과 물리적 세상의 결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 인공지능 :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으로도 불리며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자동으로 패턴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
- 빅데이터 : 온라인 쇼핑몰에서의 구매행태나 자동차의 운행 기록 등 개인의 행태에 기반한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 분석하여 패턴을 찾아내며 인공지능 기술과 밀접하게 연관이 됨
- 사물인터넷(IoT) :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직접 인터넷에 접속하여 무선으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자동차나, 로봇, 공장설비 같은 대형기계뿐 아니라 가전제품 같은 작은 기기도 독자적으로 인터넷에 접속
- 지능형 로봇 :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여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복잡한 구동이 가능하며 사물인터넷을 통해 다수의 로봇이 서로 협업하여 작업할 수 있음
- 스마트팩토리 : 기존의 공장 설비를 사물인터넷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통합시키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하여 생산의 유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으며 시장의 수요 변화에 생산이 빠르게 적응 가능
- 스마트헬스 : 인공지능을 적용하여 X-레이 영상 판독 등 자동 진단 및 의료 활동의 지원이 가능하며 개인이 휴대하는 스마트기기를 통하여 일상 속에서 기초적인 건강 관리 및 질병 조기 진단 등도 할 수 있음
- 핀테크(FinTech) : 개인의 금융거래 기록에 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적 신용분석을 수행하고 개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자동으로 제공(예 : 스마트폰을 통해 거래하는 인터넷 은행)
- O2O(Online to Offline) : 기존의 오프라인상 서비스를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할 수 있도록 중개하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개인별로 맞춤형 추천 등을 수행(예 : 배달 앱, 부동산중개 앱, 카카오 택시 등)
이렇게 IT 기술이 비 IT 영역에 대해 광범위하게 응용되는 것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기존에는 온라인 영역과 오프라인 영역이 구분되면서 IT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는 온라인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글로 검색을 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로 문서작업을 할 수 있지만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일 등은 구글과 같은 IT 기업들과는 상관이 없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자동차에 타면 네비게이션이 구글의 지도검색 서비스와 무선 이터넷으로 자동 연결이 되고 있고, 음시을 주문할때도 스마트폰의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해서 집까지 배달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에는 오프라인에서만 이뤄지던 활동에 온라인 서비스가 결합되고 있고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오프라인 활동을 온라인 활동으로 대신하게 될 수 있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던 강의를 실시간으로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거나 직장에서의 회의를 재택근무시에는 원격회의로 대체하는 것, 장을 보는 것을 직접 시장이나 마트에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는 것 등입니다. 이렇게 오프라인 활동을 아예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은 원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보다는 보완하려는 노력이 주가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근래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인하여 대면접축이 어려워지자 오프라인상의 소비를 온라인상의 소비로 대체하는 이른바 '언택트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서비스의 발전이 촉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전염이 사그라 들면서 사람들간의 거리두기 기간에 오프라인 활동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아 무리하게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일들이 다시 오프라인 위주 방식으로 되돌려질 수도 있고 기존에 온라인으로 대체하기 힘든 것으로 여겨졌던 활동까지도 온라인으로 진행한 경험이 누적되다 보면 거리두기가 끝나도 다시 예전의 오프라인 횔동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4차산업혁명과 경제성장
기술 진보와 경제성장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적 변화는 경제성장을 이끌수 있을까요? 어떤 기술적 변화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생각만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미국에서 PC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나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떨어지게 되면서 이른바 Solow의 생산성 역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성장 연구로 노벡경제학상을 수상한 Robert Solow 교수는 1987년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모든 곳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오직 통계수치에서만은 예외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당시 무어의 법칙에 의해 대변되는 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정보기술이 발전하고 있었는데도 생산성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수수께끼로 여겨졌습니다.
인텔의 설립자 고든 무어가 주장하였으며 '동일한 크기의 반도체 칩 처리용량이 2년마다 약 2배로 증가한다'는 예측을 말함
이런 생산성 역설에 대햐여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로, 정보기술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입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사물실에 PC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기존의 종이 문서 기반 업무 프로세스나 조직구조는 이에 맞춰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성원들이 새로운 기술의 활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할 뿐만 아니라 이에 맞추어 조직구조 개편이나 정책·제도적 변화등 총체적인 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새로은 기술을 완전히 활용할 수 있고,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신기술이 생산성 증대에 기여할 수 있데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전환과정의 과도기에는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에 오히려 일시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신경제 호황이 나타나면서 노동 생산성 증가율이 급등하였는데, 이는 시차를 두고서 결과적으로 1980년대의 정보기술 혁신이 결실을 맺게 한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신기술의 진정한 가치가 기존의 GDP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였다는 과소추정론입니다. 생산성 통계는 GDP를 요소투입량으로 나누어서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GDP가 과소추정되면서 생산성 역시 과소 추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GDP 통계에서 신기술의 기여가 과소평가될까요? 이는 GDP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의 화폐가치에 기반하여 측정되는데 신기술의 경우 가격인하를 통해 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되어 매출의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 검색의 경우 과거 같으면 많은 시간과 노력 및 비용을 들여야 찾을 수 있었던 정보를 매우 손쉽게 찾을 수 있게 해주지만 검색 서비스 자체의 매출은 '0'이고 이는 GDP에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기존의 GDP 통계가 신제품의 품질향상 등 질적인 측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국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실질 GDP는 명목 GDP를 물가지수로 나누어 구해지는데 바로 이 물가지수를 품질향상을 반영하여 조정하고 있습니다.
제품의 질적 향상을 측정하기 위하여 많이 쓰이는 방법으로 헤도닉 품질보정 기법이 있습니다. 이는 제품의 가격이 여러가지 특성 변수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엔진 마력수가 1% 증가하면 자동차의 가격이 몇 % 증가하는지 측정합니다. 만약 엔진 마력수 1% 증가가 자동차 가격 0.5% 증가를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신형 자동차가 기존 모델보다 마력수가 1% 증가한 대신 가격은 1% 증가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 해당 자동차의 물가지수는 1%가 아니라 품질향상분 0.5%를 뺀 0.5%만 상승한 것으로 가정합니다. 이렇게 품질향상분만큼 물가지수 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실질 GDP를 품질향상을 반영하여 증가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소비자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제품의 특성을 이렇게 단순화하여 수치화하기는 쉽지가 않으며 품질을 반영하여 GDP를 보정하는 작업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생산성
그러면 4차 산업혁명의 경우 기존의 정보기술 혁명에서의 생산성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현재 장기침체(selcular stagnation)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GDP 및 생산성의 증대가 정체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이는 혁명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이 과장되었고 부분적인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기술혁신은 과거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의 Robert Gordon 교수는 혁신 아이디어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으며 구현하기 쉬운 아이디어(나무에 낮게 매달린 열매로 비유)들은 이미 다 구현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추저적인 혁신이 매우 어려워졌고 저성장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비관론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반면에 혁신이 과거보다 둔화된 것이 아니며 생산성 정체는 아직 인공지능 등 혁신적인 신기술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초기에는 학습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떨어지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급격한 성장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미국의 1990년대 신경제 시대에 어느 정도 입증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성장 반등의 패턴이 재현될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 분명하게 전망하기는 이르다고 하겠습니다.
근래의 정보기술 혁신 추세는 정보기술의 적용대상이 기존에 IT 산업과 연관이 없던 것으로 여겨지던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정보기술이라면 주로 사무실이나 은행의 전산시스템과 같이 직접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분야로 한정되었으나, 앞으로는 자동차 산업(자율주행차), 유통(O2O, Online-to-Offline), 운수(차량공유) 등 기존의 비 IT 산업으로까지 정보기술의 적용대상이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위하여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대해 투자를 하며 인력을 교육하고 조직구조와 제도를 신기술에 맞춰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도 전산업, 나아가 전사회에 걸쳐 요구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겠습니다.
Online-to-Offline의 약자이며 숫박, 부동산 중개, 외식 등 기존의 오프라인 서비스를 온라인 플랫폼응ㄹ 통해 제공하는 온-오프라니 결합 비즈니스를 뜻함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줄일 것인가?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으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는 일들을 전부 대체하고 사람들의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대두되었습니다. 이런 우려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18, 19 세기의 산업혁명 시기에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관적인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산업혁명 후 200여 년간 지술진보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노동생산성이 증대되고 같은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수는 크게 줄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업률에는 증가 추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1966년부터 집계되기 시작하였는데, 같은 해의 실업률은 7.1%(고용률은 52.8%)였습니다.(구직기간 1주 기준). 이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실업률은 점차 하락하여 1975년에는 약 4.1%(고용률 55.9%)을 기록합니다. 실업률의 장기적 하락 추세는 지속되어 1988년 이후로는 2%대를 기록하게 되었으며 그 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늘어났지만 2010년에는 3.4%(고용률 58.0%)를 기록하는 등 3%대의 실업률이 대체로 유지됩니다. 반면 한국생산성본부에 의하면 노동생산성의 경우 1975년에서 2010년 사이에 16배가 넘게 증가하였습니다. 노동생산성이 16배가 넘게 증가하는 동안에 실업률은 오히려 소폭 하락하고 고용률은 증가한 것입니다.
노동절약적 기술진보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뚜렷히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원가절감을 통해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이에 따라 상품의 수요와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 단위의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력은 줄어들었지만 더욱 많은 단위 수의 상품을 만들게 되면서 필요한 총노동력은 줄어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동화를 통하여 대체하기 힘든 형태의 업무가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ATM 기계가 처음 도입되고 나서 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인력의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는 ATM 기계는 단순한 입출금 업무 등만을 대체할 수 있을 뿐, 대출이나 금융상품 상담과 같은 보다 복잡하고 대면 소통이 필요한 업무는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입출금 업무에 투입되는 노동력이 감소하게 되었지만 금융상품 상담 및 고객관리 등 자동화 기기가 수행할 수 없는 업무에 투입되는 인력이 늘어나게 되면서 전체적인 고용은 오히려 소폭 증가했습니다.
제조업 생산라인과 같이 정형화된 업무를 수행하는 곳에서도 사실 인력을 완전히 기계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계로 대체되지 않고 남아 있는 노동자는 자동화로 인하여 오히려 몸값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O-ring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산공정은 다양한 직무가 결합되어 이루어지는데 이중 대부분이 직무가 기계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 일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직무가 있다면 그 중요성은 기계화의 진전과 함께 더욱 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 프로세스가 전체 공정의 일부라고 할지라도 그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 생산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1986년 1월 발사 도중 폭발한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사고가 O-ring이라 불리는 작은 부품(고무 패킹) 하나의 결함에 기인하였다는 사례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우주왕복선과 같이 수백만 개 이상의 부품이 결합된 복잡한 구성물이 단 하나의 사소한 부품 결함 때문에 파괴되었듯이 복잡한 요소들이 결합해서 생산이 이뤄질 때 단 하나의 구성요소가 제 기능을 못하거나 충분한 품질을 보이지 못하면 전체적인 생산에도 큰 차질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자리 양국화 가능성과 인공지능 기술의 파급효과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기술변화 및 이로 인한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중간 일자리가 줄어들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매서추세츠 공과대학교의 David Autor 교수 등은 업무의 종류를 크게 정형적 업무(routine task)와 비정형적 업무(non-routine task)로 나누었습니다. 정형적 업무는 공장 생산라인에서의 업무나 사무실에서의 장부 작성(book-keeping) 업무과 같이 명시적으로 정의되어 있는 규칙을 따른 방식으로 수행되는 일을 뜻하며 반드시 단순한 저숙련 업무는 아닙니다. 이 중의 상당수는 높은 숙련을 필요로 하며 상당수의 중간 일자리가 정형적 업무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정형 업무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방식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일들을 뜻합니다. 여기에는 고숙련, 고임금의 전문직 일자리와 저임금, 저숙련의 서비스 일자리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과학기술자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소위 지식노동자들의 지적 노동 활동이 비정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덜 알려져 있는 사실은 저임금 일자리의 상당수도 고도로 비정형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의 용접과정을 자동화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어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는 공장들의 작업 환경은 규격화되어 있으나 공사장의 작업 환경은 전부 다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커피숍에서 서빙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아이를 돌보는 보육 노동의 경우에는 업무를 규격화하는 것이 더욱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진보로 인하여 대체되는 노동은 가장 저임금의 서비스 노동이 아니라 제조업 생산직과 같은 중간 수준 일자리들에 집중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조업 부문에서 숙련 노동자로 일하던 사람들이 해고되어 서비스업 부문의 저숙련 일자리로 전직하면서 임금이 크게 하락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의 계층구조상 허리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게 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인공지능의 도입이 기존 자동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정형적 노동 역시 자동화가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Karl Polanyi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We know more than we can tell”이라고 말하였는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David Autor 교수는 수많은 업무들이 사실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이나 절차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문제없이 수행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를 Polanyi의 역설(paradox)이라 지칭하였습니다. 이는 복잡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가설을 설정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활동 뿐만 아니라 달걀을 깨는 것과 같이 매우 단순한 일상적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방식은 모든 절차를 인간이 직접 이해하고 정의해 줘야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에 기반한 비정형 노동의 자동화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기계학습에 기반하고 있어 과정과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복적인 학습과 통계적인 근사치 획득을 통하여 답을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문자인식 시스템은 정확하게 규칙적으로 인쇄된 문자로 인식할 수 있었고 조금만 어긋나도 인식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어 서로 다른 사람이 쓴 다양한 글씨체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상당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정보기술과 보완적 관계였던 고숙련 전문직 일자리조차도 이제 대체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이후 중간 일자뿐만 아니라 상위 일자리에서도 고용증가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것이 상위 일자리조차도 자동화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1990년대의 닷컴 버블이 붕괴된 여파로 인하여 실리콘밸리 등에서 근무하는 지식 노동자들의 소득이 감소한 결과라는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도입은 기존에 자동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업무영역에서조차도 상당한 자동화를 진전시킨 것이 사실입니다. 고도의 지식 노동응ㄹ 수행하는 프로바둑기사가 그렇고, 비행기 파일럿, 그리고 의료 등 전문직 영역에 있어서도 인공지능이 상당 부분 진출했습니다. 운전이나 택배 물류 센터의 분류 작업과 같은 비정형 서비스 노동ㅔ서도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유연성을 가지고 비정형적 노동을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로 보여집니다.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보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고 미리 정해진 특정분양에서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대량으로 암기해서 정답을 맞추는 학생과 비슷합니다. 워낙에 암기력이 인간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미리 풀어본 문제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가 시험에 나오면 원리를 이해하고 푸는 학생보다 오히려 더 답을 잘 맞추지만, 전혀 다른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식별하는 이미지 인식 인공지능은 무엇이 '고양이'이고 무엇이 '고양이'가 아닌지 미리 사전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여줘서 훈련한 후에나 '고양이'를 식별할 수 있으며, '고양이'를 식별할 수 있어도 '개'를 식별할 수는 없습니다. '개'를 식별하려면 또다시 '개'의 사진을 가지고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현재의 인공지능은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를 풀기보다는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암기력을 바탕으로 패턴에 따라 문제를 푸는 수준입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프로그래밍의 연역적 방식에 귀납적인 방식을 더하여 좀 더 유연해진 것이지 인간의 유연성에 완전하게 도달하기를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울 것이며, 특히 대인 소통이 필요한 엄무에는 더욱 적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비정형적인 업무는 여전히 많으며, 그 중에는 고급 일자리 뿐만 아니라 중하위 일자리도 다수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의 업무는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확산 역시 인간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거나 없애기보다는 일자리의 구성을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4차 산업혁명, 어떻게 대비할것인가?
4차 산업혁명은 4차 산업의 시대가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모든 산업에 걸친 전방위의 기술 융합이기 때문에 특정한 유망산업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산업이 IT산업이 될 수 있고 전통 산업도 첨단 산업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가 더욱 중요해집니다. 자율주행차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자동차에 대해 알아야 하고, 차량공유 서비스를 하려면 기존의 운수업에 대해 알아야 하며, 핀테크 서비스를 위해서는 금융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 기반에 더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등과 같은 새로운 범용기술에 대한 이해가 덧붙여져야 합니다.
옛 것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익힐 수 있다는 뜻
국가나 기업의 차원에서 일단 인공지능과 같은 범용기술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범용기술은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지면서 긍정적 외부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시장에만 맡겨두면 과소투자의 우려가 있습니다. 직접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않은 기업도 그 혜택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무임승차 동기가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공공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반 개인의 차원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력을 갖추고 이를 자기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직접 코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까지는 없겠으나, 인공지능 기술의 기초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인공지능이 잘하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예: 자동번역이 매뉴얼의 번역은 능숙하지만 문학작품 번역에는 매우 서툴다는 것 등)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신기술을 도입해서 개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통찰력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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